< 기수 >
엠블라에 위치한 유명 예술대학의 교수. 미디어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며, 트레이터가 되기 전까진 종래에 비프로스트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조각을 업으로 하며, 대표작은 마고를 조각한 거대한 전시물 「기둥」입니다. 27세 무렵 세상에 내보이고 어머니 나무에게 헌정하여 현재는 지역 마고에 설치된 그 조각은 나무의 결을 따라 은총받은 수천, 수만의 사람이 섬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작을 비롯하여 그의 작품은 대개 나무를 동경하는, 때로는 숭배하는 대상으로 묘사하며 전반적으로 프로파간다적인 면모를 띱니다. 작금의 시대에 미디어아트도 아닌 순수예술, 그것도 조각으로 된 선전물이라니. 혹자는 비웃을 만한 일이었습니다만, 도리어 이러한 시대에 순수예술인 탓인지, 순전한 아름다움의 까닭인지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고 감동을 자아내는 힘이 있었습니다.
개중 대표작인「기둥」은, 그를 조각한 그 조차도 스스로를 넘지 못하리라, 너무 일찍 일생의 역작에 닿아버렸노라, 말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그리 숙덕일 만큼의 작품이었습니다.
< 출신 >
아스크르 중에서도 비교적 낙후한 동네에서 자라 일찍이 엠블라로 이주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제 분야에 두각을 드러내어 인근에서도 비할 재능을 찾기 어려운 천재라는 평을 듣곤 했습니다. 결국 20세 무렵, 정식으로 엠블라의 예술학교에 발을 들였습니다.
어린 천재는 어렵지 않게 엠블라에 적응했습니다. 사람, 지리, 문화 그 어느 것도 어렵거나 낯설지 않았고, 대개의 것이 기꺼웠습니다. 아스크르의 시골과 그 구성원들은 잠깐의 기차역일 뿐, 진작 떠나왔어야 할 자리라는 듯 금세 잊혀지고 엠블라가 그 자리를 넘치게 채웠습니다. 작은 퍼즐판을 맞지 않게 비집던 이질적인 큰 조각이 마침내 제 퍼즐판을 찾은 듯이.
< 안탈루스 >
- 7월 31일생, 양손잡이. 고상한 체 하는 것치곤 단어 선정에 다소 험한 구석이 있습니다.
- 조각가인 양어머니 밑에서 자라 그를 스승으로 두어 어릴 적부터 조각에 전념했습니다. 일찍이 재능을 꽃 피운 것은 분명 그러한 환경이 뒷받침해준 까닭일 터입니다.
- 마고포비아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20대 초반, 마고를 만나기 위해 절차를 준비하던 중 알게되었습니다. 그의 생에선 드문 실패의 경험이었습니다.
- 트레이터라는 것을 자각한지 반 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트레이터들을 반기지 않던 그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경험이었을 터입니다.
- 거만한 이들이 으레 그렇듯, 제 기준에 맞지 않으면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 편입니다. 이국의 왕은 자신의 왕이 아니라 면전서 말하는 부류처럼. 그나마 히트맨즈의 이들은 저와 동등한 위치로 두어 대우가 험하진 않습니다. 말을 아주 놓지 않는 것도 그러한 탓입니다.